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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꺾이지 않고 걸어온 길, 오래 빛날 이예슬 기자의 시간

  • 저* *
  • 조회 : 82
  • 등록일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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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13, 세저리에 왔습니다. 교수의 일을 처음 치르면서 의욕과 오류가 뒤섞인 첫 학기를 보냈습니다. 기억하기론 그 첫 학기에 (아마도 청년부 회의에서) 발제한 아이템 가운데 한센인 마을에 관한 것이 있었습니다. 어느 단비뉴스 기자가 낙후된 한센인 마을의 실태를 조사할 예정이라는 국민권익위원회의 보도자료를 발제했더군요. 나는 대뜸 핀잔을 줬습니다. “보도자료 베껴 쓸 생각하지 말고,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지 말고, 그 문제를 네가 직접 조사 취재할 생각을 해라.” 대략 그런 잔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걸 실제로 실행에 옮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조사할 생각이 아니면, 다른 아이템 발제하라는 취지였는데, 그 기자는 달랐습니다. 다른 동료 선후배를 끌어들여, 전국 곳곳의 한센인 마을에 직접 찾아갔습니다. 학기 중엔 바쁘니, 여름 방학 내내 취재했습니다. 그해 여름도 올해 못지않게 더웠습니다. 그래도 단비뉴스의 기자들은 쉴 곳 없는 산골 구석의 한센인 마을을 몇 번이고 찾아갔습니다.

 

가을에 보완 취재를 하여, 뉴스통신진흥회 공모전에 출품했고,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내용도, 앵글도, 만듦새도 아주 훌륭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나중에 그 심사를 맡은 다른 대학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 교수님이 말하기를 한센인 마을을 직접 찾아가 깊이 취재한 용기와 열정만으로도 상을 줄 만했다는 평가가 많았다더군요. (관심있는 사람은 아래 링크를 살펴보세요. 특히 프롤로그에 실린 짧은 영상을 나는 아주 좋아합니다)

https://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202

 

이 기사를 함께 쓴 당시의 단비뉴스 기자들 모두 언론사에 입사했습니다. 유재인은 조선일보, 신현우는 연합뉴스, 김세훈은 서울신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기획을 가장 먼저 발제하여 (그래서 가장 먼저 나한테 야단맞고도), 여러 친구들을 이끌며 기사의 완성도를 높였던 이예슬은 그 뒤로 오랫동안 조금 먼 길을 걸었습니다. 여의치 않은 개인적/가족적 문제와 씨름하던 그는 가끔 연락하여 푸념하거나 한탄했습니다. 그때마다 위로하지 않고 (다시 한번) 야단쳤습니다. 접지 말라, 꺾이지 말라, 계속 가라, 고 이야기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이예슬이 <부산일보> 기자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래 글과 사진도 보내왔습니다. 이 글에 다 적지 못한, 이예슬이 치렀던 노고가 있습니다. 좋은 언론인으로 향하는 길에서 조금 지친 세저리 식구가 있다면, 이예슬 선배에게 연락하여 한수 배우길 바랍니다. 이예슬 기자는 오래 갈고 닦았습니다. 그러니 아주 오랫동안 좋은 기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예슬 기자는 세저리에서 갈고 닦고 있는 여러분의 노고에 보내는 최고의 위로입니다. 여러분도 그처럼 오래 빛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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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3기 이예슬입니다.

2026년에 13기의 합격 후기라니, 민망하기도 합니다.

 

안 쌤께 합격 소식을 전하니 축하하고, 세저리 이야기 써야겠지?”라는 말씀부터 하셨습니다.

졸업한 지 너무 오래됐고, 나이 들어 취업한 게 자랑도 아니다. 못 쓰겠다. 말씀드리니 아니 그냥 써. 힘들었던 얘기 쓰면 돼. 많잖아?”라고 하십니다. 하여 조금 머쓱하지만... 학교 생활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막 시작됐던 2020년에 입학해 졸업 때까지 코로나와 함께했습니다. 학교엔 문화관 사람들밖에 없었고,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이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힘든 점도 많았지만, 오히려 선생님들과 동료들에게 더 끈끈한 정을 느낄 수도 있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화면으로만 보던 친구들을 직접 만나니 두 배로 반가웠습니다ㅎㅎ


대학원 첫 두 학기를 마친 겨울 방학 때, 이예슬의 동기들이 각자 집에서 줌으로 모여 만난 화면을 캡처한 사진

이예슬 말로는 단비 편집국장 출마하고 싶다는 두 사람(김계범, 조한주)의 소견 발표를 저희끼리 먼저 듣고 검증했다고 하는군요. 그게 너무 재밌어 모두 파안대소 하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 얼굴을 공개하면 싫어할 것 같아 자기 얼굴만 남기고 나머진 가렸다는군요. (나중에 김계범(세계일보 기자), 조한주(법률신문 기자) 모두 차례로 단비 편집국장을 맡았습니다)


방학 때 이예슬의 동기들끼리 제천 ES리조트로 MT를 갔답니다. “그때 사진 대부분이 음주 중인 모습을 찍은 것이라 그나마 점잖을 것을 골랐다고 이예슬은 부연했습니다.

 

저는 입사를 위한 필기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학교 수업과 단비뉴스 취재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친구들과 같이 프로젝트 두 개를 해냈고, 그 과정에서 취재 보도 실무를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은 덕분에 필기 통과 안정선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실무에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게 가장 어려운 건 면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졸업 후 몇 년을 집안일에 쏟았는데, 그 시간을 면접관들이 그저 공백으로 볼까 두려웠습니다. 집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언론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계속됐다는 걸 보여주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기사를 꾸준히 보며 이런저런 생각과 공부를 많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공허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기간 동안 저는 뉴스를 보지 못했습니다. 보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방송에는 매일 친구, 동료들의 기사가 나오는데, 집에만 있는 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뉴스와 담쌓고 살았지만, 면접에선 이 사실을 숨겼습니다. 명랑하고 활기찬 척, 장수생의 그림자 따위는 없는 척 오버했습니다. ‘면접에 붙을 것 같은 사람을 연기하느라 애썼습니다.

 

그렇게 최종에서 10번쯤 떨어졌을까요... 마지막 부산일보 면접에서는 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매번 청심환을 먹어도 덜덜 떨리던 면접이, 그날은 어쩐지 별로 떨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두 달 조금 넘게 법률신문에 다니고 있어서, 떨어져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든든함도 있었습니다.

 

부산일보는 2021년 필기, 2025년 면접 탈락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작년에 왜 떨어진 것 같냐는 질문에, 처음으로 위 내용 그대로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과하게 을 했던 것 같다. 자신감 넘치고 밝은 척하느라 내 본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작년에 했던 대답과 달리 사실은 공백기에 공부 하나도 안 했고, 괴로운 마음만 끌어안고 지냈다고 솔직히 이야기했습니다.

 

입사 후 선배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 진솔함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작년 면접에서 이번에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그럼 내년 면접에서 저를 또 보시게 될 것이라고 답한 것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진짜 또 온 걸 보고 이 친구는 정말 부산일보에 애정이 있구나,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너무 오래 꿈꿔왔던 일을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루하고 답답했던 언시생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나 싶습니다. 그래도 기자가 못 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틀림없이 세저리 친구들 덕분입니다.


영상편집실습 수업 과제를 핑계로 세명대 노천극장 앞 잔디에 돗자리 펴고 놀았다는 군요. 동기인 김계범이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는 장면을 찍었다고 합니다. 이예슬은 참 별 걸 다했다며 그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같이 웃고, 울고, 싸우며 공부했던 동기들이 하나둘 합격하는 걸 보면서 쟤네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해?라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ㅋㅋㅋ 시험과 면접 때마다 같이 고민해주고, 집을 내어주고, 떨어지면 욕도 시원하게 같이 해주는 동기들이 있어 합격선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놀고 있는 사진만 보내기가 민망하여, 취재하거나 공부하는 사진도 몇 장 보낸다고 이예슬이 변명했습니다.

 ‘밀폐공간 질식재해취재하던 어느 여름, 제천에 있는 어느 맨홀 아래 내려가던 장면, 그리고 심석태 교수님 수업 중 드론 실습하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수업 시간이었도 참 즐거웠다고 이예슬은 말했습니다.

 

누구보다 든든한 빽도 많았습니다. 졸업한 지 오래된 제자가 이제는 귀찮으실 법도 한데, 선생님들은 제 고민과 질문에 언제나 따뜻하게 답해주셨습니다. 제쌤, 석쌤과의 자소서 첨삭과 모의 면접(몇 번인지 셀 수도 없습니다), 안쌤이 매번 해주시던 어차피 떨어질 테니 긴장하지 말고 눈도장이나 찍고 와라는 무심한 응원 덕분에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많은 가르침 주셨던 봉쌤, 종쌤, 요쌤, 랑쌤, 지쌤께도 모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퇴임하신 이봉수 교수님 연구실에서 튜토리얼 받는 모습입니다. 이예슬 왈 제가 졸고 있는 것처럼 찍혔지만, 열심히 듣고 있었다는 군요.


이 사진은 나도 기억이 납니다. 팬데믹의 막바지 국면이라 외부 식당에서 4인 이상 모이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때 (학교 규정상 안되는 일인 것도 모르는 초짜 교수가) 문화관 앞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했습니다. 이예슬도 그 날을 기억한답니다. “테이블을 바깥에 펼친다는 생각은 아무도 못했었는데, 저녁까지 내내 즐겁게 먹고 마셨다고 합니다.

 

저를 따라다니던 불안은 다양하고 끈질겼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은데 어쩌지. 여자라서 불리한 건 아닐까.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나.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거 아닐까. 모두 실체 없는 걱정이고, 한 발짝씩 내딛으면 저 멀리 달아나는 생각들이라는 걸 저는 이제 압니다.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더 오래, 꾸준히 달려보겠습니다. 세저리에 부끄럽지 않은 기자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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